대전대학교 대전한방병원 호흡기면역센터 박양춘 교수
아직 한낮에는 햇볕이 뜨겁지만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함을 느낄 정도로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일교차가 커지고 있는 만큼 감기나 비염과 같은 환절기 질환이 서서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온 사회가 긴장해 있는 상황에서 호흡기 증상이 나타나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겨울철 불청객인 인플루엔자의 경우 발열을 포함하여 비교적 심한 증상을 동반하게 되어 코로나19 감염관리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된다.
증세가 비슷한 코로나19와 인플루엔자를 초기에 선별해 치료하지 못하면 의료현장에 혼란이 생겨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플루엔자는 연간 약 280만명의 환자를 발생시키고 있으며 폐렴 등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해 겨울철 유행시기에는 중환자실을 다 채울 정도로 중증 환자가 발생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인플루엔자와 코로나19가 동시유행하면 의료체계 과부하로 대구-경북 대유행 시기보다 더 큰 피해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인플루엔자와 코로나19 동시 유행에 대한 대응의 열쇠는 두 질환 중 인플루엔자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겨울에 코로나19의 치료제나 백신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인플루엔자는 이미 효능이 입증된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8일부터 인플루엔자 백신접종을 시작했으며, 기존의 무료접종 대상에 중고생인 만 13세~만 18세 및 만 62~64세까지 확대 포함시켰고, 지원백신도 기존 3가 백신에서 4가 백신으로 변경했다.
보통 백신은 접종 후 2~3주 후에 면역력이 생기며 건강한 성인의 경우 백신 접종을 통해 70~90%의 인플루엔자 발병을 예방할 수 있고 노인의 경우 백신 접종을 통해 인플루엔자와 관련된 합병증을 50~60% 감소시킬 수 있으며 그에 따른 사망률도 80% 정도 줄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1997년 인플루엔자 국가예방접종이 시작된 이래 65세 이상 고령자의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률이 80%를 넘어서고 있으나 젊은 성인보다 백신 접종 효과가 떨어진다는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는 백신의 바이러스 항원과 유행 바이러스가 다른 '백신 불일치(미스매치) 현상‘과 노인의 낮은 면역반응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플루엔자를 포함한 전염성, 유행성 열성 질환은 한의학의 시행감모(時行感冒), 온역(瘟疫) 등의 범주에 해당한다.
동의보감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똑같은 병을 앓는 것은 유행성 역병으로 일반 감기처럼 치료해서는 안 되고 보(補)하고, 흩고(散), 내리는(降) 치법을 써야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계절과 증상에 따라 이에 적합한 치료처방을 소개하고 있으며 특히 역병이 유행할 때 정기산(正氣散)이나 향소산(香蘇散)을 미리 복용하면 예방할 수 있다고도 했다.
최근 십전대보탕, 보중익기탕, 마황부자세신탕 등의 한약처방을 대상으로 인플루엔자 백신 면역증강 효과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어 한약이 백신효과를 보완할 수 있다는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A(H1N1)가 전세계적으로 유행하였을 때 입원환자 406례를 분석한 중국 국가중의학관리국 보고서에 의하면 양약만 단독으로 투여한 경우보다 생감초, 박하, 금은화, 대청엽 등으로 구성된 한약 처방을 병용하였을 때 더 효과적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우리 대학에서는 상기도감염 환자 480명 대상의 임상연구에서 전통 한약처방인 소청룡탕이 증상을 유의하게 감소시킴을 입증했고, 현재 부산대 및 경희대 한방병원과 함께 은교산, 삼소음의 효과를 평가하기 위한 임상시험을 수행 중이다.
새로운 전염성 질환들이 계속해서 유행하고 있는 요즘 정기를 북돋아 사기의 침범을 물리치는 부정거사(扶正祛邪)의 방법으로 면역력을 강화하여 질병에 대처하는 지혜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